제    목 :총몽 1~3권까지 보고 일단 써보기
게 시 자 :cmpman(고장원)         게시번호 :10728
게 시 일 :99/01/12 17:15:37      수 정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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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몽 Gunnm

지은이:Yukito Kishiro
읽고 평하는 이: 고장원
참고자료: 인터넷 사이트 http://members.xoom.com/battleangel/
일본 내 출판사: 슈에이 사
미국 내 출판사: Viz Comics
영어 보급판 제목: "BATTLE ANGEL ALITA"
등장인물:
일본판 이름        영문판 이름
   Gally            Alita
   Gonz            Gonzu
   Jashugun    Jashugan
   Ed Crystal        "Ed" Esdoc
   Unba             Umba
   Sala            Sarah
   Yugo            Hugo
   Zalem (Salem)        Tiphares
   Fogira Four        Figure Four
   Ruw Colins        Lou Collins

*** 일러두기 ***
다음 글은 <총몽> 1권에서 3권까지만 읽고서 쓴 글입니다. 따라서 시리즈 전체를 다 읽고 나서 오류가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이점 양해 바라며, 나중에 이 시리즈를 다 보게 되면 다시 한번 수정해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고 싶어 내가 나인 유일한 증거... 그 단서는 이 전투기술 뿐야.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서는 싸우는 수 밖에 없어. 싸우는 수밖에..."
   ------- 한글 번역판 3권 178쪽에 나오는 엔젤의 대사 중에서 ----------

<총몽>은 잔인하다. 뇌만 진짜 인간이고 나머지는 기계인 사이보그 여주인공 갤리(한국어 번역판에서는 엔젤)는 자신의 과거를 망각한 채 매일 거친 삶과 부딪치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그녀 또한 또 하나의 *껍질 속의 영혼*Ghost in shell인 셈이다. 그 와중에서 갈등은 필연적이고 그녀와 맞부딪치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목이 잘리고 사지가 절단된다.
그녀의 직업은 때로는 현상범의 목을 따는 사냥꾼에서 때로는 과격하기 짝이 없는 모터볼 선수를 오가면서 주변의 상대들(주로 사이보그들)을 분해해서 그들의 부품을 공중에 흩뿌려댄다. 작품 초반에서 쓰레기 고철더미에서 발견된 그녀가 아마 몇백년 전에는 화성의 정예 특수부대원이었을지 모른다는 암시가 깔린다. 그녀는 과거의 기억은 거의 잊었지만 다시 의식이 깨어난 지금 원래의 자기를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신의 기억(엄밀한 의미에서 자신의 인격)을 되찾기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총몽>의 시각적인 배경 설정이나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피상적으로 보면 흡사 인간미가 결여된 암울한 미래의 가진자와 못가진자들의 갈등을 다룬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로 보인다. 따라서 80년대 이후 유행인 사이버펑크의 전형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이버펑크는 인간이 기계문명에 짓눌려 살아가는 미래를 정보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가미해 가학적이고 냉소적으로 그려낸다. 흔히 사이버펑크의 효시라고 불리는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에 나오는 사이보그들과 퇴폐적인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거리는 <총몽>의 고철마을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두 시공간에 모두 기만, 탐욕, 무관심, 이기심, 공허가 자욱한 안개처럼 끼어있다.
하지만 국내 번역판 2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전형적인(또는 초기 미국식) 사이버펑크와는 약간 다른 점이 발견된다. 이 만화에서는 육신을 얻기 위해 사이보그의 목따기는 보편화되어있을 정도로 쉴 새 없이 목이 날아가고 그 과정에서 몸이 으깨어진다. 그러나 그처럼 잔인함이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하다는 듯이 그려지면서도 가슴 아픈 애절함이 잔잔하게 스며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존재 이유,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살고 있는 것일까? 나의 목적은 무엇일까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고민하고 대응해나가는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만화에서 인간적인 고뇌가 느껴지는 인물은 여주인공 갤리 뿐이 아니다. 그녀에게 몸을 가져다주고 재생할 수 있게 해준 비행도시 자렘 출신의 수수께끼의 헌터나 자렘에 가고 싶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는 유고도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고 자문한다. 심지어는 갤리에게 끈질긴 사투를 벌이는 사이보그 폭력배조차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만한 명분과 고뇌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만화에는 절대적인 선인이나 절대적인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늘 상대적인 조건에서 만나 상대적인 가치판단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드라곤 볼>류의 선명한 대결구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를 들어보자. 갤리를 다시 살려낸 자렘 출신의 현상범 사냥꾼은 정상인이 하기 어려운 온갖 거친 사건들의 해결사로 생활을 꾸려나가면서도 갤리에게만은 이루말 할 수 없는 애정과 성의를 표한다. 마치 아빠가 딸을 키우듯이... 갤리가 첫 눈에 반해 사랑하게 되는 소년 유고는 어떠한가. 그는 갤리 앞에서는 언젠가 자렘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이상을 간직한 소년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는 밤만 되면 사이보그들을 습격하여 그 사이보그의 철제 등골을 빼다가 파는 강도였다.  
하지만 어차피 이 고철 마을에는 100% 완벽하게 선한 (만화에서는 흔해빠진) 캐릭터가 한명도 나오지 않는다. 그들을 둘러싼 환경 자체가 이미 그들의 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하기에는 너무 버겁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고철 마을은 잘렘이라는 첨단 비행도시의 주민들의 지배 아래 그들에게 생필물자를 대고 그 찌거기로 연명하는 곳이다. 고철 마을의 모든 이들이 지배계급의 노예에 불과하므로 자기들끼리의 권력 다툼은 그야말로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한 것이다. 유고의 잘렘에 대한 집착에서 엿보이듯, 잘렘은 보통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뤄줄 것만 같은 유토피아처럼 생각된다. (회를 거듭하면 이에 대해서는 설명이 상세해지리라고 기대한다.) 인터넷의 어떤 평자는 그래서 잘렘이 혹시 예루살렘의 뒤 두 글자를 따로 골라낸 것이 아닌가 추측해보기도 한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총몽>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은 사이보그들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사이보그들의 갈등과 고뇌를 극대화해주기 위한 소도구로 이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사이버펑크적인 요소가 강화될 수록 인간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사이보그나 로봇들이 안방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따지고 보면 인간에 대한 또다른 시각을 역설적으로 투영한데 불과하다. 사이보그들이 보여주는 욕망, 이기심, 애정은 바로 인간들의 그것에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던 복제인간들의 사례를 떠올려보라. 이처럼 작가 유끼또 끼시로는 사이버펑크라는 퇴폐적이고 자기파괴적인 미학을 통해 현대인의 공허를 다시 한번 변주하고 있는셈이다.
지금까지의 이러한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총몽>이 극장판 애니메이션 <X>처럼 폭력과 선혈이 낭자하면서도 주제의식이 선명하고 인간미가 풍기는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알쏭달쏭한 관념어구들로 포장한 <X>는 파멸의 미학 이상 이하도 보여주지 못하는 마스터베이션적 경향이 짙은데 비해, <총몽>은 흥행적인 요소를 위해 자극적인 살육으로 세부를 채울지언정 작가가 지향하는 목적의식은 비교적 뚜렷한 것 같다. 다시 말해서 <X>의 등장인물들은 마치 무차별로 도시와 인명을 살상한 권리를 부여받고 태어난 것처럼 살기등등하지만, <총몽>의 캐릭터들은 오로지 자기자신이 자유로워지기 위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거머쥐기 위해 처절하게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선인이 아니며 보기에 따라서는 불한당에 가까우면서도 우리가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살벌한 내용을 다루면서도 인간미가 느껴지는 또다른 이유로는 플롯과 캐릭터 설정 외에도 그림체를 들 수 있다. <총몽>의 그림체는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끼라> 못지 않은 섬세한 디테일과 입체적인 앵글감, 화려한 스피드 감을 자랑하면서도 <아끼라>의 인물 선보다는 부드러움이 강조된다. 이러한 대비는 <아끼라>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대다수가 보통 인간들이고 <총몽>의 경우에는 사이보고들임을 감안할 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유끼또 끼시로Yukito Kishiro는 67년 동경 태생으로, <총몽>의 그림과 스토리를 도맡아 했다. <총몽> 시리즈에도 암시되고 있듯이 그는 모터사이클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는 반면 나비에 대해서는 공포를 느낀다. <총몽銃夢: Gunnm>은 유끼또 키시로가 91년 발표한 시리즈 만화로 슈에이사의 [비즈니스 점프]에 연재되었다. Gunnm이라는 영어 제목은 각기 *총*과 *꿈*을 의미하는 두자로 된 일본식 한자를 줄여 쓴 것으로 문자 그대로 하면 "총의 꿈 Gun Dream"이란 뜻이 된다. 이 만화는 뒤이어 Viz Comics에서 영문판을 펴냈으며 영문판 제목은 Battle Angel Alita이었다. 이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Gunnm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93년 만들어졌고 북미지역에서는 <Battle Angel>이란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구성이 탄탄한 원작에 비해 부실하게 만들어진 애니메이션판은 일본에서조차 흥행이 부진해 2편까지만 나오고 중단되는 바람에 팬들의 아쉬움을 낳았다
98년 중반 제임스 카메론이 총몽의 극장용 영화판(애니메이션이 아니라)을 감독한다는 소문이 나돈 적이 있지만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고, 슈에이 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할리우드가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눈에 띄게 진행된 것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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