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민 (NEMO )

[감상] 총총총총총총총총총총몽 1995-10-28 13:28 158 line

 


 

우르르 쏟아지는 쓰레기더미. 그 속을 뒤지며 걷고 있는 사람 한명.

그리고 찾아낸 여자의 머리하나. 그는 그것을 들고 기뻐한다.

 

총몽의 첫 장면이다. 그리고 내가 이 작품을 접하게된 첫 장면.

사이보그, 고철마을, 팩토리, 그리고 쟈렘. 이 모든것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총몽의 세계의 시작이다. 수많은 복선과 암시, 은유

들이 깔려있는 총몽에 내가 이끌린 직접적인 이유는 이렇게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이루고 있는 설정때문이기도 했다. 분명히 처음

엔 그랬지만 내용이 진행될수록 그것은 다른 것으로 바뀌게되었다.

이 작품전체를 통해 흐르는 분위기, 그리고 주제로.

약간의 괴기스러움과 광기, 답답한 듯한 공기가 총몽의 분위기에 대한 표현이라면 맞을까.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들이 총몽의 주제

를 나타내기 위한 소도구라면. 이러한 소도구들이 받쳐주는 총몽의 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또는 `자아'이다.

"이 세상에 제 정신과 광기따윈 없어.

있는 것은 천의 얼굴의 광기일뿐이지."

네스터가 한 말이다. 이 말은 이 작품의 주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준다. `자신에 대한 확인'을. 단지 한자루의 다듬어진 총, 싸우기 위해 칼로 변한자였던 갤리(이후로 엔젤이라 하겠다). 그녀는 작품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 해답을 찾고 찾아가는 엔젤. 처음으로 눈을 떴을때 그녀가 만난것은 이드였다. 그후 계속해서 만나게 되는 모

든 이들. 마카를 만나 전사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게 되고, 유고를 만나서 여자로서의 자신을 자각한다. 쟈슈건을 만나 처음으로 자신

을 확인하고 쟈팡-광전사를 만나 그녀의 추억들을 정리한다.

메피스토펠리스와의 거래로 새로 성장한 엔젤은 비산,욜등을 만나 자신의 본질을 엿보게 된다.

엔젤이 성장하는 동안 그리고 성장하기 위해 만났던 이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들의 구체화된 상이었다.

사랑, 열정, 분노, 그리고 광기. 이것들은 모두 엔젤의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었고 의미있는 것들이었다.

"하늘을...보고 있었어. 새벽전부터 계속... 전엔 본적 없는 칠흑 같은 블루. 무한한 별세계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의 블루가 떨어져 왔어. 혹은 내 몸이 산산히 폭발해 하늘 높이 올라가는... 그런느낌. 나와 하늘이 일체가 되어 이 세상

어디에든 흐르는... 그것이 수 초인지...수 시간인지..모르겠지만...기묘하고 강렬한 체험이었다. 그리고 깨달았어. 내가 만난 여러 사람

...내가 겪은 크고 작은 일들..그러나 `이 세상엔 무의미 한건 하나 없다. 마음속엔 죽은 인간도 한명도 없어'"

이 이후. 내용은 급전된다. 작품의 주제가 구체화 되면서 엔젤의 행로도 확실해 지는것이다. 끊임없는 자기자신에 대한 물음은 엔젤의 성장을 가속시키고 이드와의 이별은 그녀의 요람과의 완전한 분리를 뜻했다. 덴-케이오스, 그리고 네스터와의 만남.

이 만남은 엔젤의 사상을 구체화 시키고 그녀를 쟈렘에 한발짝 더욱 다가서게 만든다.

여기서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쟈렘'에 대한것이다. 내가 본 바로는 쟈렘은 인간에 대한 상징이 아닐까 한다. 외부와는 단절한 채, 발전의지도 없고 현실에 안주하고 자살이 행복으로 간주되는 그런 사회. 총몽의 세계가 대표하고 있는 인류의 모습이었다. 덴은 이런 쟈렘을 쓰러뜨리고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자하고 네스터는 그런 쟈렘이 싫어 지상으로 내려왔다. 둘다 쟈렘의 보수적이고 정지된 형태를 거부한 것이었다. 분노와 광기를 표현하고 있는 이들은 발전을 추구하는 인간상이었던것이다.엔젤은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녀는 더이상 한자루의 총도, 광신자 유진도 아니었다. 다만,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여행자일뿐이었고 쟈렘은 그 종착점이거나 자신을 놔 두고온 고향이었던 것이다. 결국 `쟈렘이 엔젤이었고 엔젤이 쟈렘이었다.' 쟈렘이라는 인류는 엔젤이라는 부분을 잃어버렸던 것이었고 엔젤은 다시 돌아온것이었다. 그리고, 꽃이 핀다. 그것은 인류가 새로운 열매를 맺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으로 봐도 좋을것이다. 즉, 인류의 새로운 탄생에 대한 상징인것이다. (그후, 엔젤은 새로이 탄생한다.)

"세상이...파랗다. 언젠가 본 그 파랑. 눈물로 말랐나보군.

쓸쓸해... 이렇게 애달픈 느낌이 들다니.

이제 곧 이런 생각도 못하겠지...

난 여기에 있다... 여기가 바로 내 고향."

 

-Ersis la arwir-

 

사족 : 이상은 단지 나의 오버센스일수도 있고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오버센스가 오히려 나에게 이 만화를 더욱 즐겁게 읽게 해주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 무식의 탄로일수도 있지만 이렇게 한번쯤 생각해보는것도 좋을것이라는 이유에 서이다. 덧붙여, 이 정도의 내용과 꽉짜인 스토리에서 간간히 튀어나오는 위트와 시원한 액션씬은 이 작가가 천재라 의심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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