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ANN at large Board 선거의 의미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인터넷은 전세계 수천만 명이 사용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이다. 이들 수천만 명이 이메일을 보내고,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전화번호와 같은 중복되지 않는 고유한 번호를(IP address)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번호를 이름으로 바꿔 쉽게 기억하고 찾아가기 위한 주소체계를 도메인네임체계(Domain Name System)이라고 한다. DNS를 어떠한 체계로 만들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서버를 하나로 할 것인가 복수로 할 것인가, 서로 상충되는 주소를 어떻게 할당할 것인가 등에 대한 기술적 정책을 결정하는 국제기구가 국제인터넷주소위원회(ICANN)이다. 지난 몇 년간 많은 논의를 거쳐 국제 인터넷주소위원회는 국가간 기구(Intergovernmental organization)가 아니라 비영리 사기업(non-profit private corporation)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등록된 조직의 형태를 띠고 있다.
        전세계 인터넷 주소체계에 관한 정책결정과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기구가 왜 비영리 사기업인가는 별개의 논의를 필요로 하지만, 이 조직의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정당성을 확보할 것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을 하는가 등의 문제에 대해 누군가가 결정을 해야한다. 인터넷기술 전문가가 이런 결정을 할 수 없고, 인터넷 관련 업체들이 이런 결정을 할 수 없다. 이들은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 공동체의 이해를 반영하는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우리는 인테넷 협치(Internet Governance)라 부를 수 있고, 인터넷 협치의 주체는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이다. 이를 위해 ICANN 은 일반회원(At Large Member)라는 제도를 만들고, 이들이 ICANN 이사회의 반을 선출하기로 했던 것이다.
        지난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 동안 전세계 인터넷 일반사용자 7만 5천여명은 세계 인터넷주소위원회(ICANN)의 이사 5명을 선출했다. 아시아/태평양, 유럽, 북미, 남미, 아프리카 등 5개 지역에서 각기 한 명씩 다섯명의 이사가 선출되었다. 인터넷 주소위원회의 이사는 전부 19명이다. 9명은 DNSO(domain name supporting organization), PSO(protocol supporting organization), ASO(Address supporting organization) 등 3개 이해집단이 각기 3명씩 선출하는 9명과 전세계 일반회원이 직접선출하는 이사 9명 그리고 임명된 회장 1명 등 모두 19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일반회원 선거는 5명의 이사를 뽑는 선거였다. 나머지 4명은 지역대표성 보다는 일반대표성을 위해 전세계 일반사용자들이 지역에 관계없이 인물을 보고 직접 선거하게 될 것이다 (이 선거를 언제할 지 정해진 것은 없고, 지난 7월 요코하마 회의에서 왜 4명을 이번에 뽑지 않는지, 언제 뽑을 것인지에 대해 강력한 항의와 비판이 있었다).

At Large 선거의 진행경과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이 투표할 수 있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질문 자체가 공포스러울 만큼 어려운 문제이다. 이제까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에 누구도 정답을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99년 1월 이사회는 회원자문위원회( Membership Advisory Committee)를 구성했고, 이 자문위원회가 같은 해 5월 베를린 회의에 제출한 보고서는 1) 회원은 개인회원을 원칙으로 하고,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2) ICANN 이사를 선출하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권고안을 제출했다. 이어 99년 8월 산티아고 회의에서는 간섭선거 메카니즘을 제안했고, At Large의 규모는 최소 5천명이상의 개인으로 구성하면 최대 18명의 At Large Council 위원을 선출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회의에서 미국의 Markle 재단이 선거와 선거연구를 위한 기금으로 20만달러를 기부했고, 이 기금을 활용해서 일반회원 선거에 관한 홍보와 선거절차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만들 수 있었다. 연구보고서는 CDT와 Common Cause 두 단체가 주축이 되어 2000년 3월 카이로 회의에 제출되었다.   
        이번 일반사용자 회원 선거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선거절차는 다음과 같은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ICANN 일반회원 선거 일정 (시간 역순으로 정리)

- 2000년 10월 10일 전세계 5개지역에서 5명의 이사 선출
- 투표 (2000년 10월 1일 - 10월 10일)
- 일반회원이 지지하는 후보자 추천 8월 1일- 9월 8일
- 투표자 교육과 대화 (선거캠페인) (9월 9일 - 10월 10일)
- 후보자 웹페이지 개설
- 후보자와 질의 응답
- 후보자 지명위원회 18명의 후보자 선정(May 22 - July 31)
- 회원 가입신청기간 2월 22일 - 7월 31일)


At Large 선거의 문제와 대안

        ICANN At large는 인터넷의 모든 문제를 다루는 조직은 아니다. ICANN이 gTLD와 ccTLD와 관련된 인터넷 주소자원에 관련된 정책을 다루는 기관이기 때문에 ICANN At Large 역시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들 누구나가 참여는 할 수 있지만, 주요 관심사는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와 정책에 국한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ICANN이 공식적으로 말하듯이 ICANN이 하는 일이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를 위한 기술적 운용(technical management or operation)에 국한돼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gTLD를 생성할 것인가, 무엇을 생성할 것인가는 단순히 주소자원의 기술적 운용을 넘어서는 정책결정이고, UDRP의 채택과정과 내용역시 기술적 운영을 훨씬 넘어서는 일이다.
        따라서 인터넷 주소자원에 관련된 정책을 결정하는 지구적 수준의 조직으로서 ICANN은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 공동체로부터 어떠한 형태로든 그 업무에 관한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는 바로 인터넷 일반 사용자들이 자신의 대표를 ICANN 이사회에 보내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주소자원 관리를 넘어서 개인정보보호(privacy) 문제나 정보불평등(Digital Divide) 등의 문제를 다루는 인터넷과 관련된 새로운 조직이 생겨날 경우 민주적 대표성을 확보하는 하나의 전범을 실험했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전세계에 거주하는 수많은 인터넷 사용자 공동체의 대표성을 어떻게 어떠한 절차를 거쳐 창출할 것인가에 대한 실험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커다란 의의가 있는 선거였지만, 그 과정이 최소한의 민주적 선거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넘어야 할 장애가 무수하게 많다는 교훈을 남겼다. 무엇보다 후보자 추천위원회(Nomination Committee)와 회원추천후보자(Member Nomination Committee)라는 두가지 과정을 따로 설정한 데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여러 전문가와 단체들이 지적했듯이 후보자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자들이 기업의 이해관계에 밀접한 사람들이거나 기술적 전문가이면서 기업과 느슨한 연계를 가진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반면, 중립적인 학계인사나 시민사회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후보자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왜 어떤 근거로 이들을 후보로 추천했는가에 대해서도 투명하게 밝혀진 바가 없었다. 사실상 이러한 편향된 후보자 추천결과는 ICANN 이사회가 후보자 추천위원회의 면면이 그렇게 구성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왜 ICANN 이사회가 그렇게 편향된 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을 선정했느냐는 또 이사진 대부분이 기업이해와 기술분야 전문가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ICANN 이사회를 보다 다양한 이해를 반영하는 사람으로 구성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적 절차로서 일반회원 직접 선거가 처음부터 이렇게 왜곡되었던 것이다.
        둘째 지난 2월부터 시작된 ICANN 회원가입 과정에서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2000년 5월까지 ICANN 회원 가입수를 보면 역시 미국과 유럽의 몇몇 나라가 활발할 뿐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지역은 50명을 넘지 않았다. ICANN 집행부 역시 6천명만 넘으면 일반회원 선거를 치룰 수 있다고 예상했고, 그 수는 넘으리라는 예측이 나오는 정도였다. 그런데 6월 들어서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몇몇 나라에서 자기나라의 후보자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회원가입을 캠페인을 시작했다. 자발적 가입을 위해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보다는 우리나라 후보를 ICANN으로 보내자는 식의 위로부터 아래로 동원하는 방식의 캠페인이 전개되었다. 독일, 일본, 중국, 대만에서 회원 가입 캠페인정도를 넘어서서 조직적 차원에서 회원동원이 일어났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 중국, 대만의 회원가입 동원으로 인해 약 9만 4천명이 회원으로 등록했다(표 1 참고). 요코하마 회의기간 중에 이러한 민족주의적 회원동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고, 이를 계기로 세계시민사회 인터넷포럼(Civil Society Internet Forum)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중국인이 ICANN 이사로 선출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중국의 이해를 반영하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근대적 발상이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강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라 할 수도 있지만, 사실 ASO의 대표로 이사에 당선된 경상현 교수가 없었다면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한 나라의 대표가 인터넷 주소자원을 통할하는 국제기구의 이사로 활동하는 일이야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별다른 관심이 없는 일반 사용자들을 기업과 정부가 동원해서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이것이 전근대적이었다는 점은 선거캠페인 기간 중에 다시 나타나게 된다.

(표 1) 지역별 등록회원수
등록회원수 지역  
787        Africa
93782      Asia and Pacific
35942      Europe
6486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21596      North America

(표 2) 지역별 유효회원수
전체지원자 수: 158593 명
유효회원수 ((2%)  지역
315 7 (20)        Africa
38,246 768        Asia and Pacific
23,442 471        Europe
3,548 72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10,632 214        North America


        둘째, 요코하마 회의에서 일본 JCA 네트 대표를 맡고 있는 오구라 교수가 일본의 회원동원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고, ICANN 에 대한 시민사회선언문 채택을 계기로 해서 세계각국에서 모인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회원들은 시민사회인터넷포럼(Civil Society Internet Forum; CSIF)를 결성하기로 하고, 선거과정에서 시민사회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후보자를 지원하기로 결의했다. 그 결과 각 지역에서 회원추천 후보자에 시민사회 대표를 지지하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유럽, 북미, 남미,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이 캠페인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일본의 민족주의적 회원동원을 비판하는 상징성을 위해 일본의 유키카 후보를 시민사회 후보로 내세워 지원하기로 했으나, 아시아지역 회원이 약 3만 8천명이었고, 후보추천의 최소요건이 회원총수의 2% 이상 (768명, 표 2 참조) 지지를 받아야 했는데, 결국 2%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는 대만 후보 한 사람만이 이 문턱을 넘어설 수 있었다. 지난 10월 10일 끝난 선거 결과는 5명 중 3명 (북미, 유럽, 아프리카)이 시민사회선언을 지지했던 후보자들이 당선되었다.
        셋째, 선거캠페인 과정은 지역별로 인터넷 위에 공론장(public sphere)이 활성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유럽과 북미지역에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후보자 토론회가 개최되었고, 유럽에서는 제도화된 상태는 아니지만 사실상 유럽일반회원 포럼이 구성되는 성과를 거뒀다. 토론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가지로 이뤄졌다. 원체 회원이 적고, 인터넷이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남미와 아프리카는 그렇다 하더라도 가장 회원이 많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후보자에 대한 토론은 부진하기 이를데 없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만든 후보자 질의응답 사이트에도 북미와 유럽은 다양하고 심도있는 질문과 후보자 답변, 그에 대한 반론과 반박이 이뤄진 반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질문의 양과 질에서 수준이하라는 평가를 면할 수 없었다. 앞서 지적했듯이 각 국가의 후보자를 선출하기 위해 회원동원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지역에서 막상 후보자를 검증하고, 자신들의 이해를 표출하는 질의응답과 토론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조용한 아시아사람'으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예시에서 보듯이 마지막 투표 마감 직전 마지막 질문이 중국인의 것으로서 '우리 이길 수 있나요"라고 묻고, "중국인으로서 그리고 네티즌으로서 이길 거라는" 대답이었다.
 
Topic: As a Chinese
Date: 2000-10-10 04:12:16
Author: xin li <myrhythm@sina.com>

Question: Will we win?

Nominee Replies  
Johannes Chiang - posted on 2000-10-10 05:52:50  
Yes, we will win as Chinese and as netizen. Nice to know you on the Internet.
  

 
이런 선거과정이 아시아 지역에 지역적으로 각 지역사회 안에 민주적 공론장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다시 제기하는 계기였다고 할 수 있고, 이것은 앞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커다란 과제를 안겨줬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의장을 맡고 있는 한국인터넷 포럼에도 여러 한국의 회원들이 전화나 이메일을 해서 한국사람이 왜 후보자 명단에 한 명도 없느냐, 그러면 누구를 찍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제기했지만, 후보자에게 중요한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회원은 거의 없었다.  
        이상에서 지난 10일 끝난 ICANN 일반회원 선거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한국 안에서 한국의 인터넷 거버넌스를 위해 어떠한 민주적 과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문제이다. 오는 10월 28일 우리는 처음으로 한국 인터넷 사용자대회를 개최한다. 그 이름이 뭐가 되고, 어떠한 일을 하게 되든 인터넷 공동체가 스스로의 대표기구를 창출하고 인터넷에 관련된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기초를 만드는 지난한 작업을 우리가 해내야 하는 것이다.

 


 [강명구 교수 웹싸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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